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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August, 2017

처녀항해 첫날 격침 된 세계 최대 항공모함

Posted in : 미국 및 각국의 항공모함 소개, 항공모함 영향력, 항공모함 전투력, 항공모함의 가치 on by : admin Tags: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세계 최대의 항공모함이 진수되고 시험 항해를 나갔다. 하지만 만 하루도 되지 않아 적 잠수함의 뇌격으로 해저로 사라진 일이 있었다. 1944년의 이야기다.

미 잠수함 아처-피쉬에 뇌격당한 항모는 국운이 기울어져 가던 일본이 힘들게 건조한 항모 시나노였다.
※아처 피쉬[archer fish]는 화살 고기라는 뜻이다.

2차 대전 당시 세계 최대 항모였지만 최단시간에 격침당한 기록을 세운 비운의 함이었다.

이 항모의 총톤수는 무려 72,000톤으로 24척이나 건조 되었던 미 해군 에섹스급 항모의 총 톤수가 36,380톤이었고 일본의 신예 항모였던 히류와 소류가 20,165톤이었던 사실을 보면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짐작할 수가 있다. 길이만 해도 267미터나 된다.

                                     항모 시나노.
시나노의 사진은 극히 드물다. 건조 중의 사진을 한장도 남기지 않은 전함은 시나노가 유일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시나노는 원래 일본이 야심을 품고 건조했었던 야마토급 거함 3척 중 한 척이었다. 태어나기를 항모가 아닌 전함(戰艦-Battleship)으로 태어났다.

시나노는 엄청난 크기의 항모로서 세계 챔피언이라는 영예 아닌 영예도 누렸지만 비극적인 최후로 유명한 배다.
※일본 전사에서는 항공모함을 일컫는 항모(航母)라는 단어 대신 공모(空母)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음을 참고로 알려드린다.

다른 자매함으로 전함으로 진수된 야마토, 무사시 함이 있다. 최초로 진수했던 야마토는 구레 해군공창[해군 조선소]에서, 그 다음 함으로 진수했었던 무사시는 미쓰비시 나가사키조선소에서 건조되었으나, 두 척 다 미 해군의 항공 공격으로 격침되었다.

두 척과 달리 시나노는 야마토보다 3년이 늦은 1940년에 요코스카 해군 조선소에서 전함으로 그 건조가 착수되었다.
※일본 해군은 사세보, 요코스카, 구레, 마이즈루 등 여러 곳에 해군 공창를 운영했었다.

건조 사업은 중간에 당분간 중단되기도 하면서 느리게 추진되었다.

그러나 ‘전함’ 시나노는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항모 네 척이 
격침 된 1942년에 그 운명이 바뀌는 계기를 맞았다.

항모의 필요성이 크게 요구되자 일 해군은 전함으로 건조 중인 시나노의 설계를 대폭 변경해서 항모로 변신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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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이나 순양전함으로 건조하다가 그 용도를 항공모함으로 바꾸어 건조한 경우가 많았었다.

이러한 사례는 1922년 미·영·일의 해군 함대 건조 경쟁을 상호 규제하는 워싱턴 해군 조약 이후 많았는데 대상이 주로 전함 등의 거함들이었기 때문에 건조에 비교적 제한이 덜 했었던 항공모함으로 전환 했었다.

1922년은 항공모함이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때였다. 
미국의 항모 렉싱턴, 사라토가 일본의 항모 아카기와 가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일 항모 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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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노는 공격용 항모가 아니라 지원용 항모로 건조 된 것이 큰 특징이다.

항공기, 군수품의 수송, 항공기의 수리, 연료 보급 등을 해주는 것이 지원 항모의 주요 임무다. 물론 공격용 항모로도 활용이 가능했었다.

시나노의 특징은 엄청나게 많은 대공화기들이다. 미군의 폭격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린 일본이 마치 한풀이라도 하려는 듯 상상을 할 수 없이 많은 대공화기를 시나노에 설치했다.

대공 사격이 가능한 16문의 5인치 2연장 포, 25mm 기관포 125문, 12문의 28포신 다연장 대공 로케트 포가 시나노의 가공할 대공 무장이다.
※28개의 발사관을 가진 12문의 로케트 발사기는 합계 336발의 대공 로케트를 한꺼번에 발사할 수가 있다.

                                     25mm 대공 기관포.
일 군부와 오랜 연관을 가져온 프랑스 호치키스가 디자인 했다.

항공기는 최대 139기를 적재할 수가 있었으나 임무를 공격 항모로 전환시 64기를 운용할 수 있었다.

시나노는 1944년 요코스카 해군공창[해군 조선소]에서 건조가 완료되어 10월 4일 진수식을 가졌다. 그러나 시나노는 물에만 떴을 뿐 내부는 아직 비어있었다.

의장 작업과 병장 탑재 공사를 추가로 실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대공사는 요코스카 해군공창이 아니라 구레 해군공창에서 맡기로 하였다.

징용된 미숙련 노동자가 많은 요코스카 해군공창 보다는 숙련 노동자가 많은 구레 공창에서 의장 공사를 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시나노가 아직 마무리 하지 못한 공사에는 함내 각 격실에 방수 해치를 설치하는 큰 작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코스카 상공에 나타난 B-29에 불안을 느낀 연합함대 사령부는 시나노의 구레 회항을 서둘렀다.

사실 미군의 B-29가 시나노를 공중 촬영해서 미군은 일본 해군에 괴물같이 큰 항모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본이 예상했던 대로 조만간에 대규모 폭격이 있었을 것이다.

함장 아베 대좌는 방수 해치의 완전한 설치와 승조원들의 추가 훈련을 완료하고 출항할 것을 건의 했지만 대본영은 이를 거절했다.

1944년 11월 28일 1시 30분 함장 아베 도시오 대좌가 지휘하는 시나노는 수병과 조선 기술자 300명 등을 포함한 2,184명을 태우고 세 척의 구축함 호위를 받으며 이동 겸 처녀항해에 나섰다.

아베 대좌는 주간에 세도나이카이를 항해하기를 희망했지만 대본영은 항공 엄호 자원을 마련할 수가 없어서 야간에 통과하기로 하였다.

이 세도나이카이는 주요 항로였었기 때문에 미국 잠수함이 간단없이 출몰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시나노

호위 함대는 제 17 구축대의 가게로형 구축함인 하마가제, 이소가제 그리고 유키카제 세 함이 맡았다. 세 척 다 피비린내 나는 태평양 해전에서 살아남은 베테랑 구축함들이었다.

※그러나 다음해 1945년4월 7일, 제 17 구축함대 세 척 전부가 비극적인 야마도의 오키나와 작전 출동에 나섰다가 유키카제만 살아남아 귀환했고 이소카제와 하마카제는 격침되었다.

※유키카제는 수없는 해전과 폭격에서도 큰 손상 없이 태평양 전쟁에서 살아남아 강운함(强運艦)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구축함이다. 전후 전리품으로 장개석 정부가 가져가서 60년대 중반까지 운용하였었다.

                                        유키카제

구축함들이 소속된 제 17 구축함대의 원 사령함인 우라카제가 불과 열흘 전인 11월 21일, 보르네오를 떠나 일본으로 돌아오는 길에 대만 해협에서 미 잠수함에게 격침 되고 함대 사령관 다니 대좌가 전사한 바 있었다. 세 구축함 모두 잠수함의 출몰에 무척 예리한 주의를 기울이며 감시했었다.

시나노에는 로케트 추진 자살 비행 폭탄인 오카 50발과 자살용 쾌속 폭탄 보트인 신요 6척이 적재되어 있었다.

구레에서 모든 내장 공사가 끝나면 이런 것들을 가지고 필리핀 근해에 가서 자살 특공을 주 수단으로 하는 필리핀 구원 작전을 지원하거나 수행할 예정이었다.

시나노가 장비한 12 기의 엔진 중에서 4 기가 부품 부족으로 아직 가동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최고 속도는 21노트에서 27노트 정도였다.

출처: http://mnd-nara.tistory.com/472 [N.A.R.A]